2017. 1. 23. 07:00

 프로젝트 매니저인 피터. 그는 우리가족이 호주에 자리 잡을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그리고 또 도와주고 있는 나와 가장 친한 직장 동료이자 나의 멘토입니다. 물론 나혼자만의 짝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피터가 없었다면 나는 호주 생활을 일찌감치 접고 한국으로 돌아갔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듭니다.
 피터는 영국출신이고 나보다 몇년전에 호주에 왔습니다. 나이는 금년 51세(호주식나이). 하지만 나의 둘째 아들(18개월)보다 두달 어린 딸을 하나 가지고 있다. 어찌됫든 피터에 대한 이야기는 엄청나게 많으니 다음에 기회에...

 동종업계에 계신 분들 (IT 말고 Oil / Gas / Mining / Engineering) 은 모두 체감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현재 몇년째 연이은 불경기인 것을... 사실 우리회사는 재 작년 즉 2015년 까지만 해도 실적이 나빠지지 않았고 매출 기준으로 계속 성장하고 있는 회사였습니다. 동종 업계의 Competitor는 2015년 하락세를 면하지 못했지만 저희 회사는 상승으로 마무리 하였으니 말이죠. 하지만 2016년은 달랐습니다. 모든 매출 관련 KPI는 달성되지 못하였고, 예상되었던 큰 계약건들이 줄이어 파토가 나면서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온게 작년 7월부터 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피터의 말을 빌리면 주변의 엔지니어 10명중에 8명은 일을 찾고 있다고 하니까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을 겁니다.

피터와 나는 피터의 오피스룸에서 일에 관계된 그리고 일에 관계되지 않은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일이 바쁠때는 일 이야기만 하지만 요즘과 같은 시기(?) 에는 어떻게 하면 사사로운 돈을 벌까 궁리를 하곤 합니다. 돈벌이가 된다면 세컨잡이 아니고 직장을 때려치고라도 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지요. 매일 하는 대화이긴 하지만 오늘은 그 대화의 깊이와 성격이 사뭇 달랐습니다.

피터: "A 회사에 이런 저런걸 제안하고 있는데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알아봐야 될 것 같다. 너 요즘 아무일도 없으니까 이 것 좀 해봐."
나 : "땡큐. 안그래도 뭐라고 찾아서 해야되는데 찾는게 쉽지가 않네."
피터: "일단 우리 회사 제품을 배제하여도 되. 어떻게든 되게끔 생각해 봐"
나 : "회사 제품을 제외하고 ??? 우리회사는 제품 팔아 먹고 사는 회산데 그렇게 해도 되는거야 ???"
피터 : "응. 일전에 우리회사 제품을 A 회사에 넣었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리젝 먹었어. 그리곤 우리 경쟁사의 X 제품을 도입했지. 하지만 그 X 제품의 한계가 왔나봐. Customizing 하는데 너무 비싼 가격을 불렀다고 하더군. "
나 : "우리회사도 마찬가지 아냐? Service 단가는 매우 높잖아."
피터 : "그래 우리회사 단가도 너무 높지만 경쟁사의 단가는 더 높은가 보더라구 거기다가 X 제품의 기능 제한이 이제와서 나타난 것이지. 그래서 A회사 담당자는 X 제품에 데이터를 부어 넣기 이전에 데이터 전체를 Validation 해서 그 결과를 가지고 벤더랑 이야기 하고 싶어해."
나 : "... 다 좋은데 정말 우리 제품 빼고 진행해도 되는거야?"
피터 : "우리 회사 이러다간 다 짤리고 아무도 남지 않을꺼야. 우리 제품을 빼던 안빼던 매출을 올려야 하기에 어떻게든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해...그래야 너도 살아남고 나도 살아남지..."
나 : "그래도 매니지먼트에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 스티브가 이걸 허락할까?" (스티브는 저와 피터의 보스 입니다.)
피터 : "모르겠어...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무엇인가 돈이 되는 걸 하는 게 중요해."
나 : "그건 맞지. 하지만 내가 A회사의 담당자라면, 우리회사한테 일을 주지 않을 것같은데. 우리회사 인력은 일반 IT 회사의 인력보다 비싼거 알잖아? 이런 일이라면 나같으면 일반 IT 회사에 맡기겠어."
피터 : "알지, 하지만 일반 IT 회사에 맡기려면 모든 구상이 마무리 되어 있어야 하는데 아직 A 회사의 담당자는 그 수준이 아니야. 그냥 단순히 이런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 라고 하니까 우리가 먼저 선점해서 이런 기능을 보여주려는 것이지"
나 : "하지만 큰 그림 없이는 시스템 설계가 어려워!!! 왜 우리회사에는 이런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idea bank 같은 조직이 없는거지?"
피터 : "우리는 올드한 조직을 가지고 있어. 아마도 올해 그게 바뀌는 해가 될꺼야. 어제 HR 뉴스 받았지? 아마도 그룹사에서 이제 회사를 타이트하게 관리하게 될 것이고, 보다 다이나믹한 조직으로 변경이 될 것 같아. 물론 회사 이름도 바뀔꺼고, 넌 이제 그 틀을 깨고 나와야 되. 너는 테크니션이지만 이제 영업적(?) 마인드를 가질 필요가 있어. 모든 시스템은 설계를 다 해놓고 개발 하는 것이 아니야. 단적인 예를 들면 구글 맵이 있지. 처음부터 구글 맵이 길찾기나, 각종 정보들이 인티그레이션 된줄 알아? 아니야. 구글은 맵을 먼저 만들어 놓고 거기다가 점점 살을 붙여 지금의 구글 맵이 된거지."
나 : "그거야 그렇지..."
피터 : "똑같이 A 사도 지금 특정 기능이 필요한거야. 그 기능이 되고 난 뒤에 그들이 판단하겠지 무슨 기능이 더 필요한지. 물론 우리 회사 제품을 거기에 꼽아 넣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꼽지 못해도 상관없어 어찌됫든 그들의 신뢰를 얻는게 우선이니까...그리고 시스템이 이 기능을 100%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한 80% 이상만 커버 해주어도 A회사는 만족해 할껄?"
나 : "... 너말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어. 한번 해볼께. 시간을 좀 줘"

사실 구글맵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해머로 머리를 한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발전되어 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일을 함에 있어서 항상 완벽(?)을 추구하다 보니 일어날 수 있는 모든일들을 미리 그려 놓고 안된다는 쪽으로 생각을 해온 내 자신이 갑자기 초라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Positive 한 피드백을 주기 보다는 Negative한 피드백을 주고 수많은 경우의 수를 만들어 방패막이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의 벽이 제 자신의 발전을 더디게 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지난 4년간 나는 아무런 발전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또 그이유를 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탓 / 현재 상황의 탓으로 돌리기에 급급했었으니까요...

피터도 나와 똑같이 수많은 제약 조건 속에서 일을 합니다. 저처럼 수많은 컴플레인도 하구요. 물론 본인도 저에게 이런 깨알 같은 조언을 해주지만 본인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면서 살 수도 있습니다.

생각의 껍질을 깨 부술때가 된 것 같습니다. 공부를 새로 해야하는 걸까요?

Posted by cho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