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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12.14 아버지의 죽음
2018. 12. 14. 12:05
 갑작스럽게 한국에 있는 동생으로부터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은 11월 20일 저녁. 그 이후로 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계속되는 동생과의 카톡과 전화로 한국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들을 수는 있었지만 내 눈으로 확인 되지 않은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던 걸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가 건강한 편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일이 벌어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11월 18일일 저녁에 페이스타임으로 통화 할때만 해도 아무런 징조가 없었으니까요.

 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평소에 드시고 계신 피를 묽게 하는 약 때문에 출혈이 멈추지 않으셨고 그에 의해 뇌압이 높아지고 수술로 뇌압을 낮출 수는 있지만 수술부위의 출혈이 멈추지 않을 수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응급실에서 바로 중환자실로 올라가고 중환자실에서 담당의는 비수술적 치료와 수술적 치료가 있으나 두 방법 모두 희망적이지는 않다고 하였습니다. 평소에 아버지가 하신 말씀도 있고 해서 일단은 비수술적치료를 진행하기로 하였으나 이 결정에는 정말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도맡아 일을 처리하고 있던 동생이 한말이 기억이 납니다. "모두가 꽝인 사다리를 타는 기분이다." 의사는 매번 옵션을 주지만 그 모든 결정에 이미 답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고...

 그나마 동생이 있어 충격에 빠지신 어머니를 보살피고 일도 다 처리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저보다 훨씬 강하고 잘 해내더라구요. 그냥 마냥 철없는 동생이라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제가 한국에 있고 동생이 여기 있었다면, 제가 저만큼 잘 해낼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아버지는 응급실에 들어가고 2일 이내에 "뇌사 추정" 상태가 되셨으며, 이때 저는 뇌사와 식물인간의 차이를 알게 되었습니다. 뇌사는 모든 뇌의 기능이 정지한 상황이고 인공호흡기 없이는 자가호흡이 불가능한 상태이며, 식물인간은 뇌의 일부분이 정지하고 자가 호흡이 가능한 상태라고 합니다. 보통은 뇌사 후 2주 이내에 심폐사에 이르게 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뇌사를 인정하지 않지만, 장기기증자에 한해서 사망선고를 하게 되며, 뇌사 판정을 위해서 여러 단계의 확인을 거치고 위원회를 열어 사망 선고를 하게 됩니다.  이번에 안 사실이지만 뇌사자가 다시 깨어난 케이스는 현재까지 없다고 합니다. 다시 깨어난 경우는 뇌사판단을 잘못해서 뇌사가 아닌 식물인간 상태에서 깨어난 것이지 실제 뇌사의 경우는 이론적으로도 다시 깨어날 수가 없다고 합니다. 뇌는 한번 죽으면 다시 살릴 수 없는게 정설이라고 합니다.

 올해부턴 한국에서 "웰다잉법"이라고 해서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을 본인 혹은 가족에게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법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연명의료법" 제 2조 (정의) 4항에 따르면 "연명의료"란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의 의학적 시술로서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법에 의거하여 제 어머니와 동생은 심폐소생술과 혈액투석에 대한 연명의료 거부 동의서에 싸인하였습니다. 사실 이법안에 대해 찬성/반대의 입장이 극명하긴 하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좋은 법안이라고 생각됩니다. 남아있는 가족들은 언젠가는 병원비에 대한 금전적 현실에 마주하게 되며, 그 병원비는 보통의 일반사람이 생각하기에는 큰 부담으로 작용되기 때문입니다. 실제 "임종과정" 이라는 상태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긴 하지만 저의 아버지의 경우는 뇌사추정 단계로 비교적 결정이 수월하였습니다. 전세계의 많은 국가가 현재 뇌사를 사망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호주에서 발만 동동 구르며 사망선고가 나오면 한국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도저희 기다릴 수가 없어 가족 모두 한국으로 입국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아버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으며, 마지막 모습을 봐야한다는 압박감은 없었지만, 힘들 어머니와 동생을 위해 조금은 빨리 한국에 입국하였습니다. 사실 아버지는 쓰러지신 이후 의식이 돌아온적이 한번도 없었고, 제가 한국에 도착해서 병원을 찾아갔을때는 이미 뇌압은 혈압을 넘어서 혈액에 뇌에 공급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무작정 심폐사를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매일 매일 죽음을 기다리는 것도 사실 사람이 할짓이 못되고 또 빨리 기다림을 끝내고 싶어서였을까요? 아니면 너무 힘들어서일지도 모릅니다. 어머니, 동생 그리고 저는 제가 한국에 입국하는 날 아버지의 장기기증을 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다만 장기기증은 사후에는 할 수가 없기때문에 또 기증 받는자를 생각하여 장기 자체가 건강한 상태여야 했기 때문에 장기기증을 결정한 이후로는 아버지의 각종 수치들을 정상범위내로 만들기 위한 약물 투여 및 혈액투석이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장기기증을 결정했다고 해서 바로 수술실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꽤 많은 단계의 절차가 있고, 최종적으로는 뇌사판정위원회를 거쳐 뇌사판정 시간을 사망시간으로 하고 이후 장기기증을 위한 수술에 들어가게 됩니다. 수술후 보통은 사망자의 시신 처리 후에 장례식장의 안치실로 모시게 됩니다. 하지만 저희 가족은 조직기증도 선택하여 병원에서 사후 조직기증을 위해 타 병원 (강남성모 혹은 분당차병원) 으로 이송 후 조직기증 절차를 거쳐 입관일 새벽에 안치실로 모셨습니다. 조직기증이란 장기기증과 다르며, 사망 후 뼈나 피부를 기증하는 것을 말합니다. 뼈암환자나 혹은 화상으로 인해 피부이식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증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버지의 경우 뇌출혈로 쓰러지셨기 때문에 병사가 아니고 사고사로 분류되어, 경찰조사도 받아야 했으며, 화장을 위해서는 별도의 서류가 또 필요하였습니다. 경찰 조사는 일단 형식적인 것으로 보였으나, 조사를 받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 되었습니다. 돌아가시게 된 경위, 보험관계 등등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해서 조사하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는 죽으면서도 좋은 일을 하시고, 또 저는 정신없는 3일장을 치루고 12월 1일 아침 6시 발인 후 아침 7시에 아버지는 용인 평온의 숲 화장장에서 한줌의 재로 이 세상에 오셨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셨습니다.

 이 공허함은 세월이라는 시간이 저의 가족 모두를 치료해 주겠지요.
Posted by choong